기름값과 콩값이 오른 만큼 수익을 돌려주겠다고 증권사가 약속한 상품이 바로 ETN.
다만 내가 모르는 사이 ETN을 더 비싸게 사는 호구가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를 것 같다면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수중에 있는 돈을 긁어모아 이런 것들을 왕창 사들인다고 해도 보관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마땅히 팔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
원유, 철광석, 천연가스, 구리, 콩, 옥수수, 대두 등 감히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원자재에 투자하고 싶다면 ‘ETN’을 떠올려 보자. ETN은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만기 때 특정 자산이나 특정 지수(이하 특정 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라 투자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상품이다.
콩값이 오르는 만큼 수익을 주는 채권
ETN의 만기는 최소 1년 이상, 최대 20년 이내인데 만기가 도래하기 전까지 ETN은 일반 주식처럼 한국거래소에 상장되어 HTS, MTS에서 수시로 사고팔 수 있다. ETN은 ETF와 투자하는 상품이 비슷하긴 하나 좀더 원자재에 특화되어 있다.
ETN이 ETF보다 투자 위험이 높다. ETF는 펀드이기 때문에 자산운용사가 망하더라도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ETN은 증권사가 망하면 투자금 전액을 날리게 되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증권사에 돈을 빌려줘놓고 원금과 이자 등을 특정 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라 돌려받기로 한 것과 같다. 채권과 성격이 비슷해 ETN을 상장지수채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특정 자산 가격이 하락했다면 이자는커녕 원금까지 잃게 된다.
ETN이 일반 주식과 똑같이 거래되긴 하지만 ETN에는 두 가지 가격이 있다. 하나는 투자자들이 HTS상에서 매매하는 가격이고, 또 하나는 매매 가격의 기준점이 되는 가격이다. ETN에선 매매 가격보다 ‘기준점이 되는 가격’이 훨씬 중요하다. 이 기준가격을 ‘지표가치(IV, Indicative Value)’라고 한다. 지표가치는 특정 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라 달라지는 ETN의 본래 가치를 말한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줄 세울 때 ‘기준’이라고 외치면 이 기준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이듯이 ETN 매매 가격 역시 기준가격 언저리에서 움직인다. 이러한 기준가격은 ETN 발행사인 증권사가 유동성 공급자(LP)로서 매일, 실시간 산출하고 ETN 매매 가격이 기준가격과 유사하게 거래될 수 있도록 매수, 매도가격을 제시한다.
기준가격이 중요한 것은 ETN이 만기가 될 경우 ETN 매매가격이 아닌 기준가격에 따라 투자금이 상환되기 때문이다. ETN 매매가격이 주당 1만 2,000원인데 기준가격이 1만원이라면 만기 때 1만원을 기준으로 투자금을 돌려받는단 얘기다. 상장폐지도 기준가격이 결정한다. 원유 선물 가격이 어느 날 갑자기 하루 새 100% 급락하면 기준가격이 0이 된다. 일일 가격 변동의 두 배를 따라가는 레버리지 ETN은 원유 선물이 50%만 하락해도 기준가격이 0이다. 기준가격이 0이 되면 ETN은 상장폐지된다.
2020년 4월 20일엔 5월 원유 선물 가격이 하루 새 300% 넘게 급락해 사상 첫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한 적이 있었다. 그당시 ETN의 기준가격은 6월 만기 선물을 따라갔던 터라 상장폐지는 면할 수 있었다.
ETN 투자시엔 ‘괴리율’을 꼭 알아둬야
ETN을 투자할 때 꼭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면 괴리율이다. 괴리율은 ETN 매매가격이 기준가격과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ETN 매매가격이 기준가격보다 낮아 괴리율이 마이너스가 되면 ETN 가격이 ‘본래 가치보다 싸다’는 것을 말하고, 플러스(ETN 매매 가격 > 기준가격)가 되면 비싸다는 것을 말한다. 투자자는 괴리율이 마이너스일 때 ETN을 매수하고 플러스일 때는 파는 것이 유리하다.
유동성 공급자가 ETN 매매가격을 기준가격에 가깝게 제시하는 데도 괴리율이 커질 수 있다. 2020년 3~4월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원유 수요는 계속 줄어드는데 공급이 워낙 많아 원유 선물 가격이 뚝뚝 떨어졌었다. 투자자들은 ‘유가가 더이상 쌀 수 없다’며 원유 선물 ETN을 싹쓸이했다. 그로 인해 원유 선물 ETN 기준가격이 주당 200원에 불과했던 것이 매매가격은 800원에 달했다.
ETN은 특정 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라 투자금을 지급하기로 한 상품이기 때문에 괴리율이 커지면 아무 의미 없는 숫자 놀음이 되어 버린다. 원유 선물 ETN은 수차례 거래정지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러한 일은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명 모두 ‘유가가 오른다’고 생각했다는 것인데 이는 극히 드문 사례다.
선물에 투자하는 만큼 ‘롤오버’는 필수
원자재 선물 가격 변동에 따라 움직이는 ETN의 경우 매월 롤오버(roll over)가 일어난다. 롤오버는 만기가 가까워진 선물을 팔고, 그 다음 만기가 도래하는 선물을 사는 것이다. 만기까지 그 선물을 갖고 있으면 투자자에게 진짜 원유, 콩이 도착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롤오버를 하는 것이다.
ETN은 통상 거래가 가장 활발한 최근월물의 가격 변동을 따라 움직인다. 만약 지금이 8월 초순이라고 하면 최근월물은 9월물이고 8월 중순경 만기가 돌아온다. 8월 중순쯤에 만기가 돌아오는 9월물을 모두 팔고 차근월물인 10월물을 사들인다.
만기가 가까운 선물보다 만기가 먼 선물이 비싼 것을 ‘콘탱고(Contango)’라고 한다. 싼 9월물을 팔아 비싼 10월물을 사게 되면 롤오버에 따른 비용이 발생한다. 반대로 만기가 가까운 선물이 더 비싼 ‘백워데이션(Backwardation)’ 상태라면 이익이 생긴다.
그러니 괴리율이 높은 데다 롤오버 비용까지 많이 드는 시기에 ETN에 투자한다면 손해가 크다. 2020년 4월 원유 선물 ETN 투자자들은 높은 괴리율에 울고 롤오버 비용에 땅을 쳐야 했다.
■ ETN과 ETF의 차이점
곱버스(인버스 2배), 레버리지 뜻 (ft.장기투자하면 무조건 손해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