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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자연무지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누적된다. 5세기 로마 제국 멸망 이후 과학 기술 발전이 1000년 가까이 멈췄던 극단적 케이스들을 배제하면 역사적으로 인류의 기술능력은 대부분 선형적으로 증가했다. 10마력 엔진 후속 모델은 20마력, 그다음엔 30마력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런 면에선 20세기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 반도체 기술은 당연하기보단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그런데 기술의 보편적인 발전 패턴과 동떨어진 분야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이미 1950년도부터 연구가 시작된 인공지능은 그동안 두 번의 슬럼프 또는 '겨울'을 겪어야 했다. 우선 1969 MIT의 민스키와 페퍼트 교수는 당시 사용되던 단층 신경회로망으로는 비선형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기업과 정부는 투자를 중단했고, 대부분 연구자들은 '전문가 시스템' 같은 특정 문제 해결에 최적화된 기술에만 집중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인간의 보편적 지적 능력을 모방하겠다던 인공지능의 꿈은 그렇게 사라지는 듯했던 첫 번째 '인공지능 겨울'이었다.

 

 

다행히 1980년도 말 '역전파' 알고리즘이 보편화되며 다층 신경회로망 학습이 가능해졌지만, 인공지능의 '봄'은 잠시였다. 당시 기술로는 비현실적으로 단순한 문제들만 해결 가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컴퓨터 프로세서의 등장, 학습 알고리즘의 발전, 그리고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얻어진 빅데이터는 2009~2012년을 시작으로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르네상스 시대를 가능하게 했다. 다층 신경회로망의 발전된 버전인 딥러닝을 사용한 물체인식 기술이 현실화되었고 강화학습 인공지능 시스템들이 바둑과 스타크래프트에서 인간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자율주행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집안일을 대신해줄 로봇으로 가득한 세상이 갑자기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는 언제나 실망과 좌절로 끝나는 걸까? 진정한 자율주행차의 필수인 '레벨5' 기술은 여전히 불가능하고 인공지능 로봇은 영화에서만 볼 수 있다.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로봇과 기계에 빼앗길 일자리만을 걱정했던 우리. 그런데 최근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얼굴인식 기술을 사용해 반정부 인사들과 특별 민족을 식별하려는 국가들, 인공지능 언어처리 능력을 이용해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제어하려는 정부들, 강화학습 알고리즘을 통해 소비자 선호도를 조작하려는 기업들..

 

인공지능 기술의 현실 버전은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이 약속한 유토피아도, SF 영화들이 그렸던 터무니없는 디스토피아도 아니었다. '인공적 지능'은 만들 수 있다 해도 여전히 '자연적 무지와 욕망'으로 가득한 인류는 인공지능이 개인의 자유를 가장 효율적으로 억압하는 '악마의 도구'로 추락한 새로운 스타일의 인공지능 겨울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