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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업의 종말

 

오프라인 소매 매장을 찾는 소비자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소매업의 종말(리테일 아포칼립스)'이라고 한다. 소매 매장의 종말은 크게 보면 2008년 이후 뉴노멀 경제가 새로운 표준으로 등장하고 아마존이 선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발생하고 있는 세계적 현상이다.

 

지난달에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 700여개의 소매 매장을 운영 중인 롯데쇼핑이 무려 30%에 해당하는 200여 점포를 폐점한다고 발표하여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한국 소매 매장의 종말은 이미 4년 전 시작되었다. 쿠팡이 손정의 회장의 투자로 거대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쿠팡 배송 서비스를 도입한 순간부터, 마켓컬리가 신선식품을 새벽 배송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시작됐다. 미국 아마존 사례에도 불구하고 한국 유통 대기업들은 기존 오프라인 매장 효율화와 쇼핑몰 출점에 몰두하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제는 한국의 새 쇼핑 표준이 된 인터넷 새벽배송 업체들의 뒤를 쫓아야 하는 추격자 신세가 됐다. '미래는 우리 앞에 이미 와 있다'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오프라인 유통 공룡들이 잠시 방심한 지난 4년이 이 같은 차이를 만들었다.

 

 

세계에서 서비스 산업이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도 지난 4년간 내수 경기가 호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25년 역사의 백화점 시어스를 포함해 토이저러스, 어메리칸 어패럴, 짐보리, 포에버21, 바니스 등 40여 개 기라성 같은 오프라인 소매 기업들이 도산했다. 지난 4년간 미국에서 매년 평균 9000여개 소매점이 문을 닫았고 뉴욕 맨해튼 상가 중 20%는 공실이라고 한다. 유례없는 경제 호황에도 미국을 대표하는 소매 매장들이 줄폐업하는 이유는 아마존 등 온라인 쇼핑이 급성장하면서 실적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은 소매 매장의 종말을 앞당겨 오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번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이미 여행 산업과 외식업을 한계로 내몰고 있다. 더 나아가 자영업과 소매업의 불황을 가속화시키면서 직접 사람을 접객하는 서비스 산업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대면 서비스가 위험에 처한 반면, 쿠팡 등 모바일 쇼핑과 HMR(가정대용식), 배달 서비스업 등 비대면 서비스업 시장은 성장세다. 지난 2002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 사태로 중국의 알리바바가 성장 모멘텀을 받은 것처럼 2020년 코로나19 사태는 한국의 모바일 쇼핑과 비대면 서비스업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소매업의 종말 현상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구 감소와 소비시장 주력 세대의 교체이다. 한국은 이미 생산가능한인구수가 감소하고 있고 중산층 비율이 줄고 있는 축소시장이다. 특히 50~70세에 해당하는 약 1500만명의 한국 베이비부머 소비세대는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성장시킨 주역이지만 이들의 구매력과 소비열망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현재 한국 소비시장은 40세 이하 밀레니엄 세대 소비자들이 주력이다. 스마트폰 쇼핑이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찾지 않는 오프라인 소매 매장의 쇠퇴는 불가피하다.

 

둘째, 소매업의 정체성 변화다. 이제 단순 상품 판매업으로는 버티기 힘든 시대가 왔다. 아마존처럼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지배하는 배달업이 향후 소매업이 가야할 방향이다. 식품, 의류, 헬스케어, 콘텐츠를 융합하고 초개인화 맞춤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가야 지속성장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중소상인 보호를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대규모 점포 출점 및 영업시간 규제도 이제는 재검토해야 한다. 과거 오프라인 소매시장만을 제로섬으로 가정하고 만들어진 20세기적인 규제이기 때문이다. 24시간 운영하는 온라인 사업자에 대하여 오히려 기울어진 운동장 효과만을 주고 지역도시 상권 활성화에도 방해만 되고 있다. 중소상인도 보호 못하고 지역 소비자에게도 불편만 끼치고 있다. 모바일 셀러 교육과 출구전략 제공으로 중소상인을 배려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