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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사태로 드러난 오픈마켓의 무책임 경영

 

"○○은 통신판매의 중개자이며 통신판매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은 상품 거래 정보 및 거래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500원이었던 마스크 가격이 6배 이상 뛰었다.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코로나 19 감염이 두려워 인터넷 쇼핑몰에 주문을 넣었다. 하지만 배송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결국 재고가 없어 주문을 취소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화가 나 쇼핑몰에 항의했지만 자신들은 판매 중개자라며, 판매자에게 문의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코로나19 확산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온라인 쇼핑 수요가 부쩍 늘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 시장을 중심으로 유통 판도가 바뀔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온라인의 쇼핑 수요 증가에 반해 플랫폼의 성숙도가 낮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예방 용품으로 주목받는 마스크만 해도 오픈마켓에서 각종 피해 사례가 속출했다. 마스크를 주문했는데 판매자가 임의로 주문을 취소하고 다시 비싼 값에 되팔거나, 장당 배송비를 부과해 값을 부풀리는 등 꼼수가 잇따랐다. 정부가 매점매석 판매자를 적발하고 오픈마켓들도 자체 감시를 강화했지만, 여전히 폭리 행위는 계속됐고 소비자들의 쇼핑 피로도는 커졌다.

 

 

소비자들은 비상식적인 판매를 막지 못하는 오픈마켓 업체들의 안이함을 지적한다. 쇼핑몰의 브랜드를 믿고 구매했는데, 정작 문제가 발생하자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픈마켓은 중개업자로, 상품 거래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 국내 전자상거래법상 종합유통몰과 소셜커머스는 통신판매자로, 오픈마켓, 포털쇼핑, 배달앱 등은 통신판매 중개자로 분류된다. 예컨대 종합몰에서 배송에 문제가 생기면 쇼핑몰에 항의하면 해결되지만, 오픈마켓에서는 입점 사업자에게 해결을 요청해야 한다.

 

오픈마켓은 다수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온라인상에서 거래하는 시장이다. 같은 상품을 두고 여러 판매업자가 가격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일반 쇼핑몰보다 저렴하고 상품도 다양하다. 이런 이점으로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오픈마켓의 사세는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거래액은 134조 5830억으로 전년 대비 18,3% 증가했다. 이중 오픈마켓은 35%가 넘는 가장 큰 점유율을 차지한다. 소셜커머스에서 출발한 쿠팡, 위메프, 티몬은 오픈마켓을 병행하고 있고, 이달 말 롯데쇼핑이 출범하는 통합 온라인몰 '롯데ON'도 플랫폼 일부를 개인 법인사업자에게 공개해 오픈마켓 형태로 운영할 예정이다. 마켓컬리와 SSG닷컴도 통신판매중개 사업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매점매석, 위조상품 판매 등 오픈마켓의 불공정 거래 논란이 늘고 있어, 시장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마스크처럼 상품을 비상식적으로 팔아도 현행법상 중개업자가 입점 사업자를 통제할 방법은 없다. 한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폭리를 적발하더라도, 해당 상품의 거래를 중단하는 데 그친다"며 "경고를 받은 판매자들도 다른 온라인몰로 옮겨 팔면 되기 때문에, 부적절한 판매 행위가 반복된다"고 했다. 즉, 현 상태라면 시장의 성장만큼 소비자들의 피해도 커질 게 뻔하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전자상거래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중개업자에게 시정 조치에 협력할 의무를 부과하고, 피해구제신청 절차를 마련하는 내용이었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대규모유통업법 규제 대상에 통신판매업자를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업계는 통신판매 중개업자들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울 경우, 시장 진입장벽이 높아져 스타트업과 영세 사업자들이 어려워질 거라고 맞선다.

 

오픈마켓의 입점 업체 판매 수수료는 7~15%로 종합몰(25~40%)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오픈마켓 입장에서는 입점 사업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플랫폼의 시장이 커지고 이용자의 피해가 계속된다면, 제도의 개선은 불가피하다. 이미 가격 폭리와 위조상품 판매 등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너무 많다.

 

입점 업체의 양심과 자율성에만 맡긴 오픈마켓 운영은 쇼핑몰의 경쟁력을 저하하고, 나아가 소비자의 외면을 초래할 수 있다. 언제까지 판매자 탓만 할텐가. 소비자에게 '판매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픈마켓 업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