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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메프린시페

 

정부의 외교를 비판하는 기사에는 늘 "'한감 동맹'이 있어 든든하다"는 댓글이 달린다. 북 위협이 극에 달했던 2017년 말 외교부는 '강경화 장관이 아프리카 감비아 장관을 만나 북핵 문제 협조를 구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 뒤 네티즌들이 '한감 동맹'이란 말을 만들었다. '4강 외교는 못하면서...'라는 비판이 담겨 있다. 외교부는 '못 산다고 무시하면 우리 국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강 장관이 최근 한국인 입국을 제한하는 나라들을 "방역 능력이 없다"며 공개적으로 무시했다.

 

며칠 전에는 '상투메프린시페'라는 낯선 나라가 화제가 됐다. 아프리카 대륙 서쪽에 있는 제주도 절반 크기 섬나라다. 이 나라는 한국인 입국을 금지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철회했다. 그러자 이 나라 이름이 뉴스 제목에 달리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것이다. 이에 대한 반응도 조롱이 대부분이다. "강경화 외교의 첫 쾌거" "방역 선진국 상투메를 미처 몰라봤다" "감비아와 상투메가 있는 한 두려울 게 없다"는 식이다. 강 장관으로서는 야속하겠지만 이것이 지금 많은 국민이 우리 외교를 보는 시선이다.

 

 

우리 국민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답답하고 분통이 터지니 애꿏은 나라들까지 화풀이 대상이 된 것 같다. 우한 코로나 사태로 우리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나라는 어느덧 100국을 훌쩍 넘겼다. 오래전부터 계획한 신혼여행, 친지 방문을 취소했다는 사연이 넘친다. 여행이야 나중에라도 갈 수 있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비즈니스맨과 유학생은 피가 마르는 심정일 것이다.

 

지금 한국은 갈라파고스 신세다. '세계적 흐름과 단절돼 있다'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물리적으로 고립된 상황이다. 나우루, 코모로, 부룬디 같은 생소한 나라들로부터 평소 우리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까지도 줄줄이 '한국 보이콧'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엊그제 하루 일본 땅을 밟은 한국인이 겨우 5명이었다고 한다. 매년 수백만 명이 가던 곳인데 하루아침에 그렇게 됐다니 영화보다도 비현실적이다.

 

우한 코로나 사태는 세계에서 가장 환영받던 나라라도 초기 방역에 실패하면 한순간 고립무원에 빠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전염병 출현 간격이 계속 짧아질 것이라고 한다. 이번 사태를 극복하고 다시 편하게 해외에 나갈 수 있는 날이야 오겠지만 '갈라파고스 트라우마'는 우리 국민 뇌리에 꽤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