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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체력으로 너무 달렸다

 

예정된 블랙 먼데이였다. 그제 미국 증시 폭락 말이다. 경고음은 쫙 퍼져 있었다. 바로미터는 둔화하는 기업 이익과 고공 행진하는 주가였다. 이것을 수치로 보여주는 지표가 주가수익비율(PER, 퍼)이다. 미 증시는 퍼가 19~20배로 과열돼 있었다. 실력보다 가치가 높았으니 거품이 터졌다. 2000년 IT 버블 때도 그랬다. 지금도 구글, 아마존 같은 첨단 기술주만 달아올랐지, 나머지 전통 기업 주가는 둔화해 있다. 이들 기술주의 퍼는 35~40배가 예사다. 미 기업의 시가총액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크게 앞지르고 있는 배경이다.

 

그동안 세계경제는 부채로 지탱해 왔다. 한국은 더 형편없다. 반도체만 빼면 주력 제조, 내수 산업의 이익은 최근 4~5년간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과열된 증시가 폭발 직전의 한계에 달했을 때 블랙스완처럼 나타난 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체력이 바닥난 경제 고리를 뚫고 들어오니 증시가 저항 한 번 못하고 휘청거렸다.

 

 

결국 블랙 먼데이는 과도한 투기의 결과라는 얘기다. 이런 말은 증권업자들의 입에서는 절대 안 나온다. 애널리스트는 항상 "바이(Buy)! 바이!"라고 한다. "셀(Sell)!"이란 단어를 모른다. 그러다가 이번에 "굿바이(Goodbye)" 위험에 직면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애널리스트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럴듯한 사후 해석을 쏟아낸다. 비관론으로는 증시 자체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로이드 블랭크파인 골드만삭스 회장이 어제 증시 폭락 직후 트위터에 "미 경제 기반이 좋으니 곧 반등을 기대한다"고 한 것이 좋은 사례다.

 

이런 장밋빛 희망이 세계경제의 현실을 덮을 수 없다. 특히 한국은 엄중한 현실 앞에 냉정함을 잃으면 안 된다. 그간 세계 경제는 부채에 허덕이며 마이너스 금리까지 내려운 부실 경제였다. 각국 대통령이 내 임기 중에 폼 잡겠다고 하면서다. 부채 경제에 힘입어 주가도, 부동산도 너무 올랐다. 코로나는 계기였을 뿐이다. 경제 체력이 허약해진 결정적 증거는 배럴당 27달러까지 폭락한 국제유가다. 각국이 부채 경제에 의존한 나머지 감산 합의가 불발되면서다. 그러자 "내가 살고 봐야겠다"면서 되레 증산 경쟁이 벌어져 폭락을 촉발했다.

 

국제유가는 세계경제가 침체할 때 좋은 적이 없었다. 지금은 체력이 약화된 경제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수요가 급감했다. 석유 수출로 경제를 지탱해 온 세계 3위 산유국 러시아로선 세계 1위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 요청은 앉아서 죽으라는 얘기였을 터다. 미국, 일본조차 재정 부족에 허덕이니 러시아는 오죽할까. 석유 수출은 생명줄인 셈이다. 당분간 유가만 한 경기 바로미터가 없다는 얘기다.

 

경제위기는 10년 단위로 거듭되고 있다. 1970년대 오일 쇼코부터 최근에는 2010년 남유럽 재정 사태까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사이에 외환, 금융 위기가 10년 꼴로 반복된다. 이번 블랙 먼데이도 많은 전문가가 '2020년 위기'로 예측해 왔던 대로다. 결국 인간의 지나친 탐욕에 의해 경기 과열 현상이 벌어졌고, 지금 전 세계가 그 후유증 앞에 숨죽이고 있다.

 

 

경제에 쇼크가 올 때는 길게는 2~3개월 지속한다. 어제 한국 증시는 미국이 돈을 추가로 풀기로 하면서 반등했지만 안심은 이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그랬다. 공포가 현실을 압도하면서다. 코로나19와 유가 파동이 수습되지 않으면 경제의 거울인 증시는 언제든 요동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늘이 무너질 일은 아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2008년 때와는 다르다. 미국은 플랫폼 기업의 혁신이 계속되고 있고, 한국은 다행히 외환보유액이 든든하다. 블랙 먼데이는 취약한 경제구조를 손절할 마지막 경고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동안 체력 보강도 없이 너무 오래 달렸다. 규제와 노동 개혁이 더 절실한 시점이다.